계산대 여직원이 겁에 질린 채로 내 손 위로 높이 들고 있던 잔돈을 내 손바닥에 떨어뜨렸다. 내가 주먹을 쥘때까지 동전들이 서로 부딪치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무슨 문제 있어요?" 그녀가 목소리 톤을 높이며 물었다. 나는 청바지 주머니에 돈을 밀어 넣고 침착하려 애쓰며 허벅지를 끌어내렸다. "그냥 피부가 건조해서 그래요"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보이는 내 얼굴과 팔, 손만이 아니라 내 몸 전체에 비늘처럼 나타나는 유전질환인 층판비늘증을 가지고 있다. 내 피부는 항상 가렵고 붉게 물들어 있다. 또한 몸에서 땀이 잘 나지 않아 열을 많이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강한 햇볕 아래 오래 걷지 못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늘을 찾는다. 피부가 아프지는 않지만, 늘 내 몸의 피부 전체가 팽팽하게 당기는 느낌이다. 내 눈꺼플도 마찬가지로 아래로 당겨져 있어서 나는 자주 모자로 얼굴을 가린다. 계산대에 서서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게 영국에서 산 사랑스러운 밀짚모자를 푹 눌러 쓴 채로 나는 생각했다. 빌어먹을,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그녀에게 웃으며 내 질환은 전염되는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는 대신 도시의 좁은 거리를 지나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 무거운 현관문을 쾅 닫고는 곧장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 뒤편의 작은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은 나의 안식처다. 내가 이 집을 산 이유다. 나는 신선한 공기와 그늘 아래서 햇빛을 즐길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을 갈망했다. 나는 폭염 속에서 세 그루의 나무에 물을 주며 흰색 밤나무꽃을 가꾼다. 나를 보지 못하는 나무와 식물들은 나에게 위안을 준다. 정원을 서성거리며 나는 집으로 들어가 숨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평생 침대에서 보낼 수는 없어. 나의 피부와 영혼을 달래기 위해 단풍나무의 잎을 볼에 가볍게 스치며 나 자신에거 말했다. 숨는 것은 회피하는 것이었다. 그건 성숙하지 못한 일이었다.
《출처 우리에 관하여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것》
책을 마치며...
주인공은 층판비늘증이라는 유전 질환을 가지고 있어, 피부 상태로 인해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계산대에서 직원이 겁에 질린 반응을 보이자, 그는 질환을 숨기고 얼버무리지만 속으로는 불편함과 불안을 느낀다. 결국 그는 집으로 돌아와 정원에서 위안을 얻는다.
정원은 그의 안식처이며,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그는 숨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회피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을 하며 용기를 내려고 한다.
장애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숲이 다양한 나무와 식물들을 받아들이는 모습과 같다. 곧은 소나무, 휘어진 소나무, 아카시아나무, 작은 화초들이 각자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며 숲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처럼, 사람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진정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이루어진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특별하거나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성과 다양성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사회는 더 조화롭고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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